본문 바로가기
문학

장끼전 해설 주제 줄거리 요약 뜻 특징 분석

by 문학정보 2022. 8. 20.
반응형

장끼전 

장끼전

장끼전 해설

장끼전 해설입니다. '정렬부인'은 조선 중기 이후 남성 중심의 가부장제가 강화되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입니다. 고려시대에는 아들 딸에 대한 차별 없이 부모의 재산 상속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나 조선 중기 이후 딸의 재산권 상속이 사라지고 칠거지악과 같은 남존여비사상을 강화하는 규범이 생겨났습니다. 

 

장끼전에서는 이러한 조선 중기 이후의 사회·문화적 상황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창키가 죽은 후 카츠라와 혼인하려는 새들을 등장시켜 과부의 재가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등장한 새들은 남편을 잃고 장례를 치르는 가다랑이의 처지는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주장만 내세우느라 분주합니다. 요람의 처지나 심정은 그들에겐 배려의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자신의 감정과 필요만을 생각하는 이기적인 남성 인물을 통해 남성이 처한 상황이나 의지에 무조건 여성이 따를 것을 강요했던 당시의 남성 중심 사회를 비판하고 있습니다.

장끼전 주제

장끼전 주제는 가부장제 사회의 권위적인 남성 인물의 풍자와 절차를 거부하고 재가함으로써 현실적인 행복을 찾는 주체적인 여성입니다.

장끼전 줄거리 요약

장끼전 줄거리 요약입니다. 혹독한 겨울 추위에 먹을거리를 찾아다니는 창키, 아내 카츠라와 아홉 아들은 콩 한 알을 발견합니다. 배가 고팠던 정키는 콩을 보고 뛰어들려고 합니다. 가다랑어는 어젯밤 불길한 꿈 이야기를 하면서 먹지 말라고 말려요. 하지만 창키는 고집을 부려 결국 콩을 먹으러 가다 덫에 걸려 죽습니다. 그리고 죽는 순간에도 자신의 죽음이 과부의 운명을 타고난 카츠라에게 결혼했기 때문이라고 아내를 탓합니다. 그리고 아내에게 재가를 하지 말고 절조를 지키는 정렬 부인이 되라는 유언을 남깁니다. 가다랑어는 창키의 장례를 치르느라 조문 온 사마귀, 수달 등이 청혼을 하나 거절합니다. 그러다가 젊은 창키가 조문을 마치고 청혼을 합니다. 청혼을 받아들여 재혼한 가발과 정키는 아들과 딸을 결혼시키고 명산대천을 구경하며 홍수에 들어가 조개가 됩니다.

장끼전 특징

장끼전 특징은 '장끼전'은 본래 판소리 12개 마당 중 하나인 '장기타령'이라 불리다가 그 전승이 끊기고 창문을 잃고 대본인 가사만 남아 소설로 정착한 판소리계 소설입니다. 또한 인격화된 꿩에 의해 사건이 진행되고 현실 세계에 대한 우의적 기능을 지닌다는 점에서 우화소설에 해당합니다. 본 작품은 총 3가지 장면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각의 장면을 통해 주제의식을 전달하고 있습니다. 첫번째는 먹이를 찾으러 나선 창키 부부가 맛있어 보이는 콩을 발견하고 먹을지에 대해 논란을 벌이는 장면입니다. 

 

이를 통해 남성의 권위주의적 의식과 우월의식을 비판적으로 나타내고 있습니다. 둘째, 창녀에게 치여 죽어 가는 장인의 행동이 매우 우스꽝스럽게 그려진 장면입니다. 장신은 죽으면서도 가부장적 권위를 지키려 하는데 이는 남성 우월의식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습니다. 세 번째는 '카츠라 개' 장면입니다. 정키의 장례식에 조문 온 온갖 새들이 차례로 가발에 구혼하지만 수절을 명분으로 거절하고 홀아비 정키가 조문을 오면 수절을 내던지고 유위상종이라는 명분으로 개가를 합니다. 이는 남존여비와 개가 금지라는 당시의 유교적 도덕률을 비판하고 풍자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렇게 보면 이 작품은 당대 남성의 권위주의적 의식과 가부장적 권위에 대한 비판, 여권 신장, 인간의 본능적 욕구 중시라는 조선 후기 서민의식을 잘 반영하고 있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장끼전 분석

장끼전 분석에서 장끼전은 꿩을 의인화한 소설입니다. 여자라고 해서 가다랑이의 말을 듣지 않고 욕심에 눈을 속여 콩을 먹고 죽은 창키와 창키가 죽은 뒤 장례식이 끝나자마자 바로 다시 시집간 가다랑이의 모습을 통해 순간의 욕심에 따라 행동하는 것을 경계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남성 중심의 사회와 여성의 재혼 금지라는 당시의 현실을 비판하고 있습니다. 즉 장인과 여러 새들을 통해 양반사회의 위선을 폭로하고 가사의 모습을 바탕으로 여성의 권리를 높이고자 하며 개인의 감정과 권리가 중요하다는 주장도 담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풍자는 조선 후기 서민의식이 반영된 결과로 볼 수 있습니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