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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통곡헌기 허균 에 관련 문학 정보를 알려드릴께요.
통곡헌기 허균

통곡헌기 허균 해석 해설
통곡헌기 허균 해석 해설입니다. 문답법 구성을 통해 '통곡헌'이라는 이름을 갖게 된 집의 내력을 밝힘으로써 시대에 대한 비판적 인식과 성찰을 드러내고 있는 작품이다. 글쓴이는 불우한 시대를 맞아 비극적 삶과 죽음을 맞은 가태부, 묵적, 양주, 완적, 당구 등의 예를 들어 '통곡의 도'에 대해 말한다. 이들은 인간의 사소한 정이 아니라 시대의 아픔을 맞아 통곡을 한, 위대한 인물들이다. 그런데 그들이 살았던 시절과 비교했을 때 허균이 살았던 당시는 더더욱 볼 것이 없는, 즉 더 불우한 시절이다. 이러한 시절을 맞아 통곡하고 싶은 심정에서 '통곡헌'이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통곡헌기 허균 주제
통곡헌기 허균 주제 입니다.
▒ 갈래 → 고전수필, 기(記)
▒ 성격 → 풍자적, 교훈적, 우의적
▒ 구성
1) 기 → 사람들이 집을 '통곡헌'이라 붙인 이유에 대해 물음
2) 승 → 조카가 '통곡헌'이라 붙인 이유에 대해 설명함.
3) 전 → 허균이 부연 설명함.
4) 결 → <통곡헌기>를 쓴 이유에 대해 밝힘.
▒ 특성
1) 작가의 실제 체험을 바탕으로 하여 기록한 작품
2) 문답을 통해 고정관념을 깨는 새로운 인식을 드러냄.
3) 시대와의 불화로 고통스럽게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이유가 드러남.
4) 중국의 고사에 나오는 인물들의 사례를 인용하여 글쓴이의 주장을 강화함.
▒ 주제 → '통곡헌'의 내력과 시대에 대한 비판적 인식과 성찰
▒ 출전 → <성수부부고>
통곡헌기 허균 줄거리 내용 요약
통곡헌기 허균 줄거리 내용 요약 입니다.
내 조카 허친이 집을 짓고서는 통곡헌(慟哭軒, 처마 헌, 고정과념을 깬 이름)이란 이름의 편액(偏額. 종이·비단·널빤지 따위에 그림을 그리거나 글씨를 써서 방안이나 문 위에 걸어 놓는 액자)을 내다 걸었다. 그러자 모든 사람들이 크게 비웃으며 말했다.
"세상에는 즐길 일들이 얼마나 많거늘 무엇 때문에 곡(哭)이란 이름을 내세워 집에 편액을 건단 말인가? 곡이란 상(喪)을 당한 자식이나 버림받은 여인이 하는 행위가 아니던가. 세상 사람들은 그런 곡소리를 몹시 듣기 싫어한다네, 남들은 기필코 꺼리는 것을 일부러 가져다가 집에 걸어두는 이유가 대체 무엇인가?"(통곡에 대한 사람들의 통념 또는 고정관념을 바탕으로 해서, 집의 이름을 곡이라고 지은 연유에 대해 묻고 있음.)
* 기 : 집에 '통곡헌'이라는 이름을 붙인 이유에 대해 물음
그러자 허친이 이렇게 대꾸하였다.
"저는 이 시대가 즐기는 것과 등지고 세상이 좋아하는 것을 거부합니다. 이 시대가 환락을 즐기므로 저는 비애를 좋아하며, 이 세상이 우쭐대고 기분 내기를 좋아하므로 저는 울적하게 지내렵니다. 세상에서 좋아하는 부귀나 영예를 저는 더러운 물건인 양 버립니다. 오직 비천함과 가난, 곤궁과 궁핍이 존재하는 곳을 찾아가 살고 싶고, 하는 일마다 반드시 이 세상과 배치되고자(서로 반대로 되어 어그러지거나 어긋남.) 합니다.(나의 조카 허친이 집에 '통곡헌'이란 이름을 붙인 이유. 현실에 대한 비판적 의식을 드러냄. ) 곡을 하는 것은 세상에서 제일 미워하는 행위입니다. 이를 능가하는 일은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곡이란 이름을 내세워 제 집의 이름을 삼았습니다.(곡을 하는 것이 세상에서 제일 미워하는 행위이기 때문에 이러한 이름을 지었다고 하는 것은 다분히 역설적인 발상으로, 세상 사람들이 가장 싫어하는 것을 내세움으로써 효과적으로 세태에 대한 비판을 하고 있는 것이다.)"
* 승 : 조카가 집의 이름을 '통곡헌'이라고 지은 이유
그 사연을 듣고서 나는 조카를 비웃은 많은 사람들을 준엄하게 꾸짖었다.
"곡하는 것에도 도(道)가 있다. 인간의 일곱 가지 정[七情, 희노애락애오욕] 가운데 슬픔보다 감동을 일으키기 쉬운 것은 없다. 슬픔에 이르면 반드시 곡을 하기 마련인데, 그 슬픔을 자아내는 사연도 복잡다단하다. 그렇기 때문에 시사(時事, 그 당시에 일어난 여러 가지 사회적 사건)가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이 진행되는 것을 가슴 아프게 생각하여 통곡한 가의(賈誼, 중국 문제 때의 학자 · 정치가로, 유학과 오행설에 기초를 한 새로운 제도의 시행을 주장함)가 있었고, 하얀 비단실이 본바탕을 잃고 다른 색깔로 변하는 것을 슬퍼하여 통곡한 묵적(墨翟, 중국 춘추 전국시대 노나라의 사상가 · 철학자로, 유가에게 배웠으나 무차별적 박애의 겸애를 설파하고 평화론을 주장하여 유가와 견줄 만한 학파를 이룸)이 있었으며, 갈림길이 동쪽 · 서쪽으로 나 있는 것을 싫어하여 통곡한 양주(중국 전국 시대의 학자로, 노자사상의 일단을 이은 염세적 인생관으로 자기중심적인 쾌락주의를 주장함)가 있었다. 또 막다른 길에 봉착하게 되어 통곡한 완적(중국 위나라의 사상가 · 문학자 · 시인으로 노장의 학문을 연구하였으나 정계에서 물러난 후, 술과 청담으로 세월을 보냄)이 있었으며, 좋은 시대와 좋은 운명을 만나지 못해 스스로 인간 세상 밖에 버려진 신세가 되어 통곡하는 행위로써 자신의 뜻을 드러내 보인 당구(唐衢, 당나라 중엽 시인. 비통한 내용의 시문을 보면 읽고 나서 반드시 곡을 하였고, 당시 사람들 사이에 울기를 잘한다는 말이 나돎.)가 있었다.(시대의 아픔을 맞아 절실하게 통곡한 위대한 인물들. 이들은 모두 깊은 생각이 있어서 통곡한 사람들이다. 여기서 깊은 생각이란 세상에 대한 깊은 생각을 말하는 것으로, 이들은 모두 세상을 깊이 통찰한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 글쓴이는 이들이 하는 곡은 일반적인 곡과는 다르다고 보고 있다.)
그분들은 모두가 깊은 생각이 있어서 통곡했을 뿐, 이별로 마음이 상하거나 남에게 굴욕을 느껴 가슴을 부여안은 채 통곡하는 아녀자를 흉내내지 않았다.
그분들이 처한 시대와 비교할 때, 오늘날은 훨씬 더 말세에 가깝다.(현실 상황에 대한 강한 부정의식을 드러냄) 국가의 일은 날이 갈수록 그릇되어 가고, 선비의 행실은 날이 갈수록 허위에 젖어 들어가며, 친구끼리 반복하여 제 이익만을 추구하는 배신 행위는 길이 갈려져 분리됨보다 훨씬 심하다. 또 현명한 선비들이 곤액(困厄, 몹시 딱하고 어려운 사정과 재앙이 겹친 불운)을 당하는 상황이 막다른 길에 봉착한 처지보다 심하다. 그러므로 모두들 인간 세상 밖으로 숨어 버리려는 계획을 도모한다.(현실에 회의를 느끼고 자연 속으로의 귀의를 통한 현실 도피) 만약 저 여러 군자들이 이 시대를 직접 본다면 어떠한 생각을 품을지 모르겠다. 아무래도 통곡할 겨를도 없이, 모두들 팽함(彭咸, 은나라 때의 충신으로 알려져 있으며, 자신의 직언이 통하지 않자 스스로 물에 빠져 목숨을 다함)이나 굴원(屈原, 초나라 재상으로 모함을 받아 자신의 뜻을 펴지 못하다가 멱라수에 몸을 던져 스스로 목숨을 끊음.)이 그랬듯 바위를 가슴에 안고 물에 몸을 던지려 하지나 않을까?
허친이 통곡한다는 이름의 편액을 내건 까닭이 여기에 있을 것이다(예전보다 더 불우한 시대에 살고 있으므로 이러한 시절을 맞아 통곡하고 싶은 심정에서 '통곡헌'이라고 지었을 것임). 그러니 너희들은 통곡이란 편액을 비웃지 않는 게 좋을 것이다."
* 전 : 작가 허균의 부연 설명
내 말을 듣고, 비웃던 자들이 "잘 알았습니다."라며 물러났다. 오간 대화를 정리하여 글로 써서, 뭇사람들이 의아하게 생각하는 심정을 풀어주고자 한다(<통곡헌기>를 지은 이유).
* 결 : <통곡헌기>를 쓰게 된 내력
통곡헌기 허균 배경 특징
통곡헌기 허균 배경 특징 입니다.
한편 작가는 이 글을 쓰게 된 동기를 '뭇사람들이 의아하게 생각하는 심정을 풀어주기 위해서'라고 마지막에 제시하고 있는데, 현실 비판 의식이 강한 작가의 성향으로 볼 때, 이는 글을 통해 현실을 비판하고자 하는 의도를 완곡하게 표현한 것이라 짐작할 수 있다.
허균은 '통곡헌'에 대한 해석과 함께 타락한 한 시대의 모습이 말세에 가깝다고 하며 날이 갈수록 그릇되어 가고 있는 사회에 대한 비판을 드러내고 있다. 또한 인간의 일곱 가지 감정 가운데 슬픔보다 감동을 일으키기 쉬운 것은 없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날이 갈수록 세상의 슬픔은 깊어가지만 제대로 슬퍼하는 자는 찾아보기 어려워져 가는 세태를 염려한다. 문제는 스스로 슬픔과 가난을 찾아나서는 사람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울 수조차 없도록 사람을 몰아치는 사회에 있다는 것이다. 허균의 말을 굳이 빌리지 않아도 슬픔이란 개인적인 것이든 공적인 것이든 가장 지극한 마음자리에서 솟아나는 물줄기임에 분명하다. 이러한 슬픔의 감정을 그릇된 사회에 대한 안타까움과 관련시켜 볼 수 있다.
통곡헌기 허균 분석
통곡헌기 허균 분석 입니다.
◆ 허균의 비판의식
허균의 사회 비판의식은 그의 스승 이달에게 많은 영향을 받은 것이다. 이달은 뛰어난 재주와 빼어난 글씨를 자랑한 당대의 문장가였지만, 서얼 출신이라는 신분적 한계 때문에 세상에 나아가 자신을 뜻을 펼치지 못한 불우한 인물이었다. 이달은 평소 양반 사대부 중심의 권력과 신분 사회에 대한 비판을 꺼리지 않았는데, 이러한 점이 허균에게 자연스레 이어진 것으로 볼 수 있다. 허균은 탁월한 재능을 지닌 이달을 통해 신분 및 적서 차별의 모순을 뼈저리게 통감하면서 부정적인 현실에 대한 강한 비판 의식을 지니게 된다.
이러한 점은 '통곡헌기'에도 잘 드러나는데 새 집에 '통곡헌'이라는 이름을 내건 조카 허찬의 행동을 비웃는 사람들에 대한 나무람, '나라의 정치가 어지럽고, 양반 사대부의 행실은 야박하고, 파당을 지어 싸우느라 친구 간에도 서로 배척하는' 세태에 대한 통렬한 비판, 그리고 중국 고사에 인용된 인물들이 오늘날 세태를 보면 통곡도 할 수 없을 지경이라는 신랄한 현실 인식은 바로 현실에 대한 허균의 비판 의식을 여실히 드러내 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 허균의 산문 세계
허균이 활동한 조선 중기는 우리 산문사에서 매우 중요한 시기로, 최립, 유몽인, 이정귀, 신흠, 장유, 이식과 같은 대가들이 등장하여 산문의 모범을 제시하였다. 이처럼 산문의 창작이 새로운 단계로 접어드는 시기에 허균은 복고적 추세를 보인 당대의 흐름과 달리, 자유롭게 개성을 드러낸 문장을 창작하였다.
그의 산문은 대개 두 가지 경향으로 나눌 수 있는데, 하나는 짧은 형식의 척독(尺牘, 편지)이다. 그의 척독은 정서적이며 유머러스한 형식에 자유분방한 생활 모습을 담고 있으며, 동시에 냉소적이며 혁명적인 발언도 담고 있다. 다른 하나는 사회 개조와 국가 혁신을 주장하는 논설문으로, 직설적 어법을 통해 부조리한 현실을 비판하고 그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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