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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의제문 김종직
조의제문 김종직 해설
조의제문 김종직 해석 해설입니다. 김종직은 항우(項羽)에게 죽은 초나라 회왕(懷王), 즉 의제(義帝)를 조상하는 글을 지었는데, 이것은 세조에게 죽음을 당한 단종(端宗)을 의제에 비유한 것으로 세조의 찬탈을 은근히 비난한 글이다. 이 글을 김종직의 제자인 김일손(金馹孫)이 사관(史官)으로 있을 때 사초(史草)에 적어 넣었다. 연산군이 즉위한 뒤 《성종실록(成宗實錄)》을 편찬하게 되었는데, 그 때의 편찬책임자는 이극돈(李克墩)으로 이른바 훈구파(勳舊派)에 속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김일손의 사초 중에 이극돈의 비행(非行)이 기록되어 있어 김일손에 대한 앙심을 품고 있던 중, 김종직의 ‘조의제문’을 사초 중에서 발견한 이극돈은 김일손이 김종직의 제자임을 기화(奇貨)로 하여 김종직과 그 제자들이 주류(主流)를 이루고 있는 사림파(士林派)를 숙청할 목적으로, ‘조의제문’을 쓴 김종직 일파를 세조에 대한 불충(不忠)의 무리로 몰아 선비를 싫어하는 연산군을 움직여, 큰 옥사(獄事)를 일으켰다. 이것이 무오사화(戊午史禍)인데, 그 결과로 김종직은 부관참시(剖棺斬屍)를 당하였고, 김일손·권오복(權五福)·권경유(權景裕)·이목(李穆)·허반(許盤) 등이 참수(斬首)되었다.
조의제문 김종직 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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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의제문 김종직 줄거리
조의제문 김종직 줄거리 입니다.
丁丑十月日(정축십월일) : 정축 10월 어떤 날
余自密城道京山(여자밀성도경산) : 나는 밀성으로부터 경산으로 향하여
宿踏溪驛(숙답계역) : 답계역에서 숙박하는데
夢有神披七章之服(몽유신피칠장지복) : 꿈에 신(神)이 칠장의 의복을 입고
頎然而來(기연이래) : 헌칠한 모습으로 와서
自言(자언) : 스스로 말하기를
楚懷王孫心爲(초회왕손심위) : “나는 초나라 회왕인 손심(孫心)인데
西楚霸王所弑(서초패왕소시) : 서초패왕에게 살해 되어
沈之郴江(침지침강) : 빈강(郴江)에 잠겼다.”
因忽不見(인홀불견) : 그래서 문득 보이지 아니하였다.
余覺之(여각지) : 나는 꿈을 깨어
愕然曰(악연왈) : 놀라며 이르기를
懷王南楚之人也(회왕남초지인야) : “회왕은 남초 사람이요,
余則東夷之人也(여칙동이지인야) : 나는 동이 사람으로
地之相距(지지상거) : 지역의 서로 떨어진 거리가
不啻萬有餘里(불시만유여리) : 만여 리가 될 뿐이 아니며
而世之先後(이세지선후) : 세대의 선후도
亦千有餘載(역천유여재) : 또한 천 년이 넘는데
來感于夢寐(래감우몽매) : 꿈속에 와서 감응하니
玆何祥也(자하상야) : 이것이 무슨 상서로움일까
且考之史(차고지사) : 또 역사를 상고해 보아도
無沈江之語(무침강지어) : 강에 잠겼다는 말은 없으니
豈羽使人密擊(기우사인밀격) : 어찌 항우가 사람을 시켜서 비밀리에 쳐 죽이고
而投其屍于水歟(이투기시우수여) : 그 시체를 물에 던진 것일까
是未可知也(시미가지야) : 이것을 알 수 없으니
遂爲文以弔之(수위문이조지) : 마침내 문을 지어 조문한다.
惟天賦物則以予人兮(유천부물칙이여인혜) : 하늘이 사물의 법을 마련하여 사람에게 주었으니
孰不知尊四大與五常(숙불지존사대여오상) : 어느 누가 사대와 오상을 높일 줄 모르리오.
匪華豐而夷嗇(비화풍이이색) : 중화라서 풍부하고 오랑캐라서 인색한 바 아니니
曷古有而今亡(갈고유이금망) : 어찌 옛적에만 있고 지금은 없겠는가
故吾夷人(고오이인) : 그러기에 나는 오랑캐이요
又後千載兮(우후천재혜) : 또 천 년을 뒤졌건만
恭弔楚之懷王(공조초지회왕) : 삼가 초 회왕을 조문한다
昔祖龍之弄牙角兮(석조룡지롱아각혜) : 옛날 조룡이 아각을 가지고 노니
四海之波(사해지파) : 사해(四海)의 물결이
殷爲衁(은위황) : 붉어 피가 되었어라
雖鱣鮪鰍鯢(수전유추예) : 비록 전유와 추애일지라도
曷自保兮(갈자보혜) : 어찌 보전하겠는가
思網漏而營營(사망루이영영) : 그물 벗을 생각에 급급했으니
時六國之遺祚兮(시륙국지유조혜) : 당시 육국의 후손들은
沈淪播越(침륜파월) : 숨고 도망가서
僅媲夫編氓(근비부편맹) : 겨우 편맹과 짝이 되었다오.
梁也南國之將種兮(량야남국지장종혜) : 항양(項梁)은 남쪽 나라의 장군의 자손으로
踵魚狐而起事(종어호이기사) : 어호(魚狐)를 쪼치 일을 일으켰네.
求得王而從民望兮(구득왕이종민망혜) : 왕위를 얻되 백성의 소망에 따랐어라
存熊繹於不祀(존웅역어불사) : 끊어졌던 웅역(熊繹)의 제사를 보존하였도다.
握乾符而面陽兮(악건부이면양혜) : 건부(乾符)를 쥐고 임금이 됨이여
天下固無大於芉氏(천하고무대어간씨) : 천하에는 진실로 미씨보다 큰 것이 없었다.
遣長者而入關兮(견장자이입관혜) : 장자(長者)를 보내어 관중에 들어가게 함이여
亦有足覩其仁義(역유족도기인의) : 역시 족히 그 인의(仁義)를 보았다.
羊狠狼貪(양한랑탐) : 양흔낭탐이
擅夷冠軍兮(천이관군혜) : 관군(冠軍)을 마음대로 평정하였구나
胡不收而膏齊斧(호불수이고제부) : 어찌 잡아다가 제부(齊斧)에 기름칠 아니했는고.
嗚呼(오호) : 아아,
勢有大不然者兮(세유대불연자혜) : 형세가 너무도 그렇지 아니함이여
吾於王而益懼(오어왕이익구) : 나는 왕에게 더욱 두렵게 여겼어라
爲醢腊於反噬兮(위해석어반서혜) : 반서(反噬)를 당하여 해석(醢腊)이 됨이여
果天運之蹠盭(과천운지척려) : 과연 하늘의 운수가 정상이 아니었구나
郴之山磝以觸天兮(침지산오이촉천혜) : 빈의 산이 우뚝하여 하늘에 닿음에야
景晻愛以向晏(경엄애이향안) : 그림자가 해를 가리어 저녁을 향하고
郴之水流以日夜兮(침지수류이일야혜) : 빈의 물은 밤낮으로 흘러가는구나
波淫泆而不返(파음일이불반) : 물결이 넘실거려 돌아올 줄 모른다.
天長地久(천장지구) : 천지가 장구한들
恨其可旣兮(한기가기혜) : 한이 어찌 다할까
魂至今猶飄蕩(혼지금유표탕) : 넋은 지금도 표탕하다.
余之心貫于金石兮(여지심관우금석혜) : 내 마음이 금석을 꿰뚫음이여
王忽臨乎夢想(왕홀림호몽상) : 왕이 문득 꿈속에 임하였구나
循紫陽之老筆兮(순자양지로필혜) : 자양의 노필을 따라감이여
思螴蜳以欽欽(사진윤이흠흠) : 생각이 초조하여 흠흠하다
擧雲罍以酹地兮(거운뢰이뢰지혜) : 술잔을 들어 땅에 부음이어
冀英靈之來歆(기영령지래흠) : 바라기는 영령은 와서 흠항하소서
조의제문 김종직 배경 특징
조의제문 김종직 배경 특징 입니다.
사림파의 영수 김종직(金宗直)의 조의제문(弔義祭文)"은 무오사화(戊午士禍)의 계기가 된글로 알려졌다. 무오사화( 연산군 4년*1498년) 당시 사후(死後) 6년이 지난 김종직은 의제(義帝)를 애도한 이 글 때문에 부관참시(剖棺斬屍) 당했다.
"정축년(丁丑年) 10월 나는 밀양(密陽)에서 경산(京山 성주)으로 가다가 답계역(踏溪驛)에서 잤다" 로 시작되는 "조의제문"에서 김종직은 꿈에 초(楚)나라 회왕(懷王)손심(孫心)이 나타나 "서초패왕(西楚覇王*항우)에게 살해되어 빈강(彬江)중국남방의강)에 잠겼다"고 말하고는 사라졌다.고 적었다.그는"역사를 상고해보아도 시신을 강에 던졌다는 말은 없으니 아마 항우가 사람을 시켜서 비밀에 처 죽이고 그 시체를 물에 던진 것인지 알 수 없다"라면서 "주자(朱子)의 필법(筆法)"에 따라 조사를 쓴다 고 했다.
이글에 대해 사림파의 정적 훈구파는 "입으로 읽지 못할 뿐만 아니라 눈으로도 볼 수 없다" 고 공격해 사화(士禍)가 발생하는데 김종직이 의제를 현몽(現夢)했다는 정축년(丁丑年 세조3년*1457년) 10월이 영월로 쫓겨 간 단종이 살해당한 그 달이란 점을 간파한 것이다. 항우(세조)에게 죽은 의제(단종)의 시신이" 빈강에 잠겼다"는 것도 노산이 해를당한 후 그 시신을 강물(동강)에 던졌다"는 아성잡설(鵝城雜說)등의 기록을 후세에 전하기 위한 것이었다 동강에 뜨있던 시신을 호장(戶長) 엄흥도(嚴興道)가 몰래 수습해 묻었는데 수종24년(1698년) 단종으로 복위되면서 시신을 묻은 자리가 장능(莊陵)이 되었고 엄흥도는 사육신과 함께 배향(配享)되었다.
조의제문 김종직 분석
조의제문 김종직 분석 입니다.
정축년(세조 3년, 1457) 10월 어느 날 나는 밀성密城(지금의 경상북도 밀양密陽)에서 경산京山을 거쳐 답계역踏溪驛(지금의 경상북도 성주星州)에서 잤다. 그때 꿈에 한 신령이 일곱 가지 무늬가 들어간 예복(七章服)을 입은 헌칠한 모습으로 와서 “나는 초(楚) 회왕(懷王) 손심(孫心)인데, 서초패왕(西楚霸王) 항우(項羽)에게 살해되어 침강(郴江)에 빠뜨려졌다”고 말하고는 홀연히 사라졌다. 나는 깨어나서 놀라며 중얼거렸다. “회왕은 중국 남쪽에 있는 초 사람이고 나는 동이(東夷) 사람이니, 거리는 만 리 넘게 떨어져 있고 시간의 선후도 천 년이 넘는다. 그런데도 꿈에 나타났으니 이것은 얼마나 상서로운 일인가. 또 역사를 상고해보면 강에 빠뜨렸다는 말은 없는데, 혹시 항우가 사람을 시켜 몰래 쳐 죽이고 그 시체를 물에 던진 것일까. 알 수 없는 일이다.” 마침내 글을 지어 조문했다.
하늘이 만물의 법칙을 마련해 사람에게 주었으니, 누가 하늘ㆍ땅ㆍ도(道)ㆍ임금의 네 가지 큰 근본(根本)과 인ㆍ의ㆍ예ㆍ지ㆍ신(仁義禮智信)의 다섯 가지 윤리(五倫)를 높일 줄 모르겠는가. 그 법도가 어찌 중화에는 풍부하지만 동이에는 부족하며, 예전에는 있었지만 지금은 없겠는가. 그러므로 나는 천 년 뒤의 동이 사람이지만 삼가 초 회왕을 조문한다.
옛날 진시황(秦始皇)이 포학을 자행해 사해가 검붉은 피바다가 되니, 큰 나라나 작은 나라나 모두 그 폭정을 벗어나려고 허둥댈 뿐이었다. 전국시대 여섯 나라의 후손들은 흩어져 도망가 보잘것없는 백성으로 전락했다. 항량(項梁)은 남쪽 초의 장군의 후예로 진승(陳勝)과 오광(吳廣)을 뒤이어 대사를 일으킨 뒤 임금을 구해 세우니, 백성의 소망에 부응하고 진시황에 의해 끊어졌던 나라의 제사를 다시 보존했다.
그의 도움에 힘입어 회왕은 하늘이 내려준 제왕의 상징을 쥐고 왕위에 오르니, 천하에 진실로 미씨(羋氏 초 왕족의 성씨)보다 높은 사람은 없었다. 회왕은 항우 대신 유방(劉邦)을 관중(關中)에 들여보냈으니 그 인의(仁義)로움을 충분히 알 수 있다. 그러나 회왕은 항우가 상장군(上將軍) 송의(宋義)를 멋대로 죽였는데도 어째서 그를 잡아다가 처형하지 않았는가. 아, 형세가 그렇게 할 수 없었으니 회왕에게는 더욱 두려운 일이었다. 끝내 배신한 항우에게 시해를 당했으니 하늘의 운세가 크게 어그러졌다.
침강의 신은 하늘을 향해 우뚝 솟았지만 햇빛은 어둑어둑 저물어가고, 침강의 물은 밤낮으로 흘러가지만 넘실넘실 되돌아오지 않는다. 하늘과 땅이 끝이 없듯 한(恨)도 어찌 다하리오. 회왕의 혼은 지금까지도 떠돌아다니는구나.
내 충성된 마음은 쇠와 돌도 뚫을 만큼 굳세기에 회왕이 지금 홀연히 내 꿈에 나타났다. 주자(朱子)의 원숙한 필법을 따라 떨리는 마음을 공손히 가라앉히며 술잔 들어 땅에 부으며 제사하노니, 바라건대 영령은 와서 흠향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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