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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금루기 이제현 해설 주제 뜻 배경 특징 줄거리 정리

by 문학정보 2022. 9.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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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문학정보입니다.

오늘은 운금루기 이제현 에 관련 문학 정보를 알려드릴께요.

 

 

운금루기 이제현

운금루기 이제현

 

 

운금루기 이제현 해설

운금루기 이제현 해석 해설입니다. 이 글은 원제가 운금루기 (雲錦樓記)로, 동문선 제69권 기(記)에 실려 있다. 아름다운 경치란 반드시 먼 산 속이나 바닷가에 있는 것이 아니다. 가까운 우리 주변에도 자리잡고 있는데, 사람들이 그것을 모를 뿐이다. 사람이 많은 도화지 속에 있는데, 사람들이 그것을 모를 뿐이다. 사람이 많은 도화지 속에 있던 연못의 아름다움을 발견하여, 그곳을 가꾸어 새롭게 단장한 사람만이 능히 그 아름다움을 즐길 수 있음을 이 글은 보여준다. 명예와 이익만을 다툴 때는 오직 그것밖에 보이지 않는다.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조그만 사물에서도 아름다움을 발견하여 만족할 줄 아는 여유가 필요하다 하겠다. 


이 작품은 시가(市街) 중심에 위치한 운금루가 어지 있는 줄 모르고 지내는 시정 사람들이 많음을 지적하면서 참된 즐거움이란 가까운 곳에 있다는 소박한 진리를 전하고 있다. 운금루에 얽힌, 자신의 즐거웠던 경험을 소개함으로써 글쓴이의 말이 더욱 설득력 있게 다가오고 있다. 

 

운금루기 이제현 주제

운금루기 이제현 주제 뜻 정리 입니다. 

▣ 제재 : 운금루와 주위의 연못
▣ 주제 : 운금루에서 느끼는 참된 즐거움

 

운금루기 이제현 줄거리

운금루기 이제현 줄거리 입니다. 

산천을 찾아 구경할 만한 명승지가 반드시 궁벽하고 먼 지방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임금이 도읍을 정한 곳으로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도 구경할 만한 산천이 없었던 적이 없다. 그러나 명예를 다투는 자는 조정에 모여들고 이익을 다투는 자는 시장에 모여드니, 형산(衡山), 여산(廬山), 동정호(洞庭湖), 소상강(瀟湘江)이 반 발짝만 가도 굽어볼 수 있는 거리 안에 있어서 가 볼 수 있는데도 그런 것들이 있는 줄도 모른다. 어째서 그러한가? 사슴을 좇느라 산을 보지 못하고 금을 움켜쥐느라 사람을 보지 못해서이다. 가을 터럭 끝은 살피면서도 수레에 실은 나뭇짐은 보지 못하니, 이것들은 마음이 쏠리는 곳이 있어 눈이 다른 데를 볼 겨를이 없기 때문이다. 

일 벌이기를 좋아하면서 재력이 있는 자는, 관문(關門)과 나루를 지나 시골 마을을 골라 자리 잡고, 산천을 유람하는 데 골몰하면서 스스로를 고상하다고 여긴다. 사강락(謝康樂)은 길을 개척하여 백성들을 놀라게 했고, 허범(許氾)이 집값을 묻고 다닌 것은 호걸스러운 선비가 꺼리는 바이다. 그러니 고상하게 그런 일을 하지 않는 것이 더 낫다. 
경성(京城) 남쪽에 연못 하나가 있는데 백 묘는 된다 그 연못가로 빙 둘러 있는 여염집들이 고기의 비늘처럼 빽빽하게 즐비하다. 이고 지고 말 타고 걷는 사람들이 그 곁을 따라 왕래하며 앞서거니 뒤서거니 줄지어 다닌다. 그러나 그들이 어찌 거기에 그윽하면서 넓은 경내가 그 사이에 있는 줄을 알겠는가? 


[그 후 지원(至元) 정축년(1337) 여름 연꽃이 한창 피었을 때, 현복군(玄福君) 권후(權侯)가 그곳을 발견하고 매우 사랑하여 바로 그 연못 동쪽에 땅을 사서  누각을 지었다. 누각의 높이는 두 길이나 되고 넓이는 세 길이나 되었다. 주춧돌은 안 받쳤지만 기둥이 썩지 않게 하였고, 기와를 이지는 않았지만 이엉이 새지 않게 하였다. 서까래는 다듬지 않았어도 굵지도 휘지도 않았으며, 흙만 바르고 단청은 하지 않았는데 화려하지도 않고 누추하지도 않았다. 대략 이와 같은데 연못 가득한 연꽃을 다 가질 수 있었다. 이에 그의 아비 길창공(吉昌公)과 형제와 동서들을 초청하여 누 위에서 술자리를 베풀어 즐겁고 유쾌하게 노느라 날이 저물어도 돌아갈 줄을 몰랐다. 그때 아들 중에 큰 글씨를 잘 쓰는 자가 있어 운금(雲錦)이라는 두 글자를 써 달아 누각의 이름으로 삼았다.] 


내가 한번 가서 보니 붉은 꽃향기와 푸른 잎 그림자가 넓게 연못 속에 끝없이 비치는데, 어지러이 흩어지는 바람과 이슬이 연기처럼 일렁이는 모습을 연출하니, 이름이 그냥 얻어진 게 아니라 하겠다. 그뿐만 아니라 용산(龍山)의 여러 봉우리가 청색을 모으고 녹색을 바르고 처마 밑으로 몰려들어, 컴컴할 때와 밝을 때와 아침과 저녁에 늘 각각 다른 모양을 나타낸다. 또 건너편 여염집들의 연기 속의 자세한 모습을 누각에 앉아서 하나하나 셀 수도 있으며, 이고 지고 말 타고 걸으면서 왕래하는 사람, 달리는 사람, 쉬는 사람, 돌아다보는 사람, 부르는 사람, 친구를 만나 서서 말하는 사람, 어른을 만나 절하는 사람들의 모습도 모두 숨길 수 없으니, 바라보며 즐길 만하다. 그러나 저편의 그 사람들은 연못이 있는 것만 보았지, 누각이 있는 줄을 알지 못하니, 또 어찌 또 누각 안에 사람이 있는 줄을 알겠는가? 참으로 구경할 만한 명승지는 꼭 궁벽하고 먼 지방에만 있는 것이 아닌데, 조정과 시장 사람들이 언제나 보면서도 그것이 있는 줄을 알지 못하는 것이니, 하늘이 만들고 땅이 감추어 함부로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는 것이겠는가? 

권후는 만호(萬戶)의 부절(符節)을 허리에 차고 외척의 세력을 깔고 앉아 나이는 옛사람의 강사(强仕)할 나이도 되지 않았다. 부귀와 이록(利祿)에 빠져 취해 있을 때인데, 그는 인자(仁者)와 지자(智者)가 즐기는 바를 즐기되, 백성들을 놀라게 하지도 않고 선비들에게 미움을 사지도 않으면서 시장과 조정 사람들이 하고 넓은 경내를 차지하여, 그 어버이를 비롯하여 손님까지도 즐겁게 하고, 자기 자신을 비롯하여 남까지 즐겁게 하니, 이는 가상할 만한 일이다. 

 

운금루기 이제현 배경 특징

운금루기 이제현 배경 특징 입니다. 

▣ 특징
① 기행문적 성격을 띠며, 대상에 대한 묘사가 두드러짐
② 즐거움을 취하는 방법에 대한 글쓴이 고유의 관점이 드러남

 

운금루기 이제현 분석

운금루기 이제현 분석 입니다. 

▣ 이제현 : 1287(충렬왕 13)~1367(공민왕 16). 고려 후기의 문신·시인. 성리학을 들여와 발전시켰으며 많은 시문을 남겼다. 본관은 경주(慶州). 초명은 지공(之公). 자는 중사(仲思), 호는 익재(益齋)·실재(實齋)·역옹(櫟翁). 아버지는 검교정승인 진(瑱)이다. 1301년(충렬왕 27) 15세에 성균시에 장원, 이어 대과에 합격했다. 그해 대학자인 권보(權溥)의 딸과 혼인했다. 1303년 권무봉선고판관과 연경궁녹사를 거쳐 1308년 예문춘추관 등 여러 관직을 역임했다. 1314년(충숙왕 1) 백이정의 문하에서 정주학(程朱學)을 공부했고, 같은 해 원나라에 있던 충선왕이 만권당(萬卷堂)을 세워 그를 불러들이자 연경(燕京)에 가서 원나라 학자 요수·조맹부·원명선 등과 함께 고전을 연구했다. 1319년 원나라에 갔다가 충선왕이 모함을 받고 유배되자 그 부당함을 원나라에 밝혀 1323년 풀려나오게 했다. 1357년 문하시중에 올랐으나 사직하고 학문과 저술에 몰두했다.
▣ 갈래 : 한문 수필
▣ 성격 : 모새적, 서정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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