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있는 우리말 어휘의 맛 김소진 소설어를 중심으로
1.
우리들이 일상생활에서 쓰는 언어는 그 습득 방식을 기준으로 나눌 때 두 가지로 대별할 수 있을 것이다. '체득(體得) 언어'와 '학습(學習) 언어'가 그것이다. 태어나 자라면서 자신도 모르게 부모 형제와 마을 사람들이 쓰는 언어를 듣고 따라하며 '온몸으로 배운 것'이 '체득 언어'요, 의도적으로 사전이나 여러 가지 책자를 통해 암기하여 알게 된 것, 즉 지적 작용에 의해 암기된 '머리로 배운 것'이 '학습 언어'일 것이다.
그런데, 이 '학습 언어'가 아주 유용하게 쓰이는 경우가 있다. 바로 문학 작품이 그렇다. 특히 김소진 소설을 읽다 보면, 독자는 두 번 놀란다. 작가의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순우리말의 사용에 우선 놀라고, 그것이 학습된 언어라는 점에 또 한 번 놀라게 된다.
김소진은 대학시절 황석영 · 이문구 · 박완서 등의 작품을 읽으며 습작기를 보낸다. 이 시기를 전후해 신기철 · 신용철 공저인 <새우리말 큰사전>을 독파하며 우리말 어휘 · 어구 · 속담 등을 대학노트에 기록 · 정리하면서 이를 외웠다. 이렇게 학습한 어휘들은 자라면서 어머니 곁에서 들었던 입말이 더해져 그의 소설 문체에 중요한 밑거름이 된다.
1991년 단편 <쥐잡기>가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문단에 데뷔한 이후 의욕적으로 작품 활동을 하게 된다. 그러나 1997년 34세의 젊은 나이로 타계하고 만다. 최근 김소진 문학에 대한 재조명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는데, 특히 이 글은 그의 데뷔작인 <쥐잡기>에 보이는 아름다운 고유어의 사용례와 그 어휘들이 지니고 있는 미묘한 맛을 소개하는 한편, 이러한 어휘 사용이 지니고 있는 의의를 간단히 살펴보고자 한다.
2.
단편 <쥐잡기>에는 그가 심혈을 기울여 사용한 우리말 표현 어휘들이 상당수 등장한다. 이러한 어휘들을 살펴보자.
① 아버지의 늘쩡한 목소리가 귓전에 와 달라붙었다.
② 어디 잠 한번 발 뻗고 제대로 잘 수가 있나. 거저 워카를 신은 채 노루잠을 자는 게지.
③ 민홍은 왠지 수꿀한 생각이 들어 자신도 모르게 어깻죽지 사이로 목을 움츠렸다.
④ 민홍은 하르르 떨리는 얄포름한 눈꺼풀을 간신히 진정시키며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⑤ 고개를 들어 자신 앞에 껑더리처럼 우두커니 서 있는 아버지를 보매 더욱 사무치는 기분이 들었다.
예문 ①의 '늘쩡한'은 '느른하고 굼뜬'의 뜻으로, 느릿느릿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목소리를 드러내는 데 효과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예문 ②의 '노루잠'은 '잠이 깊이 들지 못하고 자주 깨는 경우'에 쓰이는 어휘로, 맹수의 위협 때문에 항상 긴장하며, 잠을 깊이 잘 수 없는 커다란 눈망울을 가진 노루가 잠을 자는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예문 ③의 '수꿀한'은 '무서워서 몸이 으쓱한'의 뜻으로, 무서움에 몸이 오그라들면서 움츠리는, 즉 꿀리는 행동을 드러내는 표현이다. 그냥 '무섭다'는 표현과는 그 의미하는 바가 확연히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예문 ④의 '얄포름한'은 '얄브스름하다, 조금 얇은 듯하다'는 뜻으로, '얄팍한'이나 '얇은'이라는 표현과는 다른 맛을 풍기는 어휘이다. 예문 ⑤의 '껑더리'는 '심한 병고로 몸이 몹시 야윈 사람'을 지칭한다. 자신의 바로 앞에 있는 야윈 아버지를 보면서 '껑더리'라고 표현하고 있는 장면이 쉽게 연상되지 않는다. 그런데 실상 이 표현은 깡마른 아버지에 대한 연민의 마음을 드러내고자 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서술자가 아버지에 대한 반감 내지 적대감을 효과적으로 드러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필자가 조사한 바로는 단편 <쥐잡기> 한 편에서만 특이한 우리말 어휘가 102가지나 등장한다. 이는 거의 두세 문장에 하나 꼴이다. 편의상 대표적인 예를 간단히 들어보면 다음과 같다.
◆ 겅성드뭇하다 : 많은 수효가 듬성듬성 흩어져 있다.
* 조붓한 공간 속에 갇혀 겅성드뭇한 대머리를 인 채 움펑 꺼져 대꾼한 눈자위로 방 안을 내려다보고 있는 아버지는 무엇에 놀랐는지 잔뜩 겁에 질린 표정이었다.
◆ 곱송그리다 : (놀라거나 겁이 나서) 몸을 오그리다.
* (아버지는) …… 어깨까지 한껏 곱송그리고 있어 방금 염병을 앓고 난 이 같았다.
◆ 길차다 : 아주 매끈하게 길다.
* 산동네 집치고는 마당도 제법이고 길차게 자란 나무도 몇 그루 착실하게 갖춘 빨간 기와집의 차동철 씨가 이사를 가고 난 뒤 들어온 할머니는 조쌀해 뵈는 보살이었다.
◆ 꼭뒤를 지르다 : 꼭뒤를 누르다. 어떤 세력이나 힘이 위에서 누르다. '꼭뒤'는 뒤통수의 한가운데.
* 민홍은 언제부턴지는 모르지만 꼭뒤를 지르듯 자신을 압박해 오는 벽시계의 초침 소리에 신경이 몹시 쓰이는 터였다.
◆ 다문다문 : 시간적으로 잦지 않고 동안이 좀 뜨게. 드문드문
* 절간의 내막은 정순이의 입을 통해서 다문다문 흘러나왔다.
◆ 답쌔기 : 보잘것없는 물건이 한 군데 많이 모여 있는 것.
* 참으로 오랜만에 당반을 가득 채운 잡화 때문에 야트막한 천장까지 물건이 자라자 아버지는 잘 쓰지 않던 먼지털이로 구석구석 흔뎅거리고 있던 거미줄이나 먼지 답쌔기를 떨어내는 시늉을 하고 있었다.
◆ 몸태질 : (감정이 격해서) 제 몸을 부딪거나 내어던지거나 하는 짓.
* "흐흥 새벽녘에 기러케 몸태질을 하드이만 이러케 출두를 하셨어."
◆ 새청맞다 : 목소리가 날카롭고 새되다.
* 아버지로부터 다지름을 받는 순간 민홍은 며칠 전 쥐약에 쌀을 섞고 물방울을 떨구며 주저주저 개고 있던 아버지의 등 뒤를 향해 저녁밥을 푸다 말고 밥주걱을 세차게 흔들어대던 철원네의 새청맞은 목소리가 다시금 귓전을 때리는 것 같았다.
◆ 수떨판이 : 수선스럽고 떠들썩한 사람
* "이런 수떨판이 같으니라구. 여자가 종아리를 시퍼렇게 내놓고설랑 어딜 들뛰어다니는 거야."
◆ 쑬쑬하다 : 장사나 거래의 이문이 적잖다.
* 가끔 절집을 찾아오는 사람들이 가게에서 초나 향 그리고 음료수 등을 쑬쑬히 사 가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철원네가 일진이나 토정비결은 물론 당사주 등에 일견식이 있음을 알아본 보살 할머니는……
◆ 아둔패기 : '아둔한 사람'을 얕잡아 이르는 말
* "끌끌 저런 아둔패기 같으니라고. 머릿속이 일단 물들고 나면 고것이 피보다 더 진하다니깐 그 지경이야."
◆ 아수쿠러하다 : 아리송하다(방언)
* 아, 그러니깐 저쪽에선 발써 좌익애덜이 악악거리는 소리가 아수쿠러하게 들려오지 않겠니?
◆ 암지르다 : 으뜸되는 것에 덧붙여서 하나가 되게 하다.
* 어려서부터 따라다니던 이 말 속에는 민홍이 자신 암질러 그 함경도 종자의 한 사람으로 싸잡혀 있음이 분명했다.
◆ 움펑 : 속으로 푹 들어가 우묵한 모양
* 조붓한 공간 속에 갇혀 겅성드뭇한 대머리를 인 채 움펑 꺼져 대꾼한 눈자위로 방 안을 내려다 보고 있는 아버지는 무엇에 놀랐는지 잔뜩 겁에 질린 표정이었다.
◆ 응등거리다 : 이를 사납게 드러내다.
* 그 사이로 퍽퍽 북어 두들기는 소리가 나고 찢어져 내리는 비명 소리에 섞여 새어나오던 이를 응등그려 문 여인의 저주는 점점 잦아들었다.
김소진은 앞서 살펴본 것처럼 동시대의 어느 작가보다도 풍부한 우리말 어휘를 사용하고 있다. 특히 그동안 자주 사용되지 않아 우리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져가고 있는 순우리말을 재발견하여 적절하게 사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크다. 그렇지만 이러한 어휘 사용이 전체 문장과 적절하게 어울리지 않는 부분과 생경한 느낌을 주는 어휘들도 더러 눈에 띈다. 그것은 김소진이 몸소 체득한 언어가 아닌 데서 생기는 문제로 생각한다.
지금까지 김소진 단편에 나타난 우리말 사용례를 간단히 살펴보았다. 적확한 문장과 단어를 찾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던 김소진의 우리말 어휘에 대한 의식적인 활용은 소설이 지향해야 할 '살아 숨쉬고 있는' 우리말 사용에 대한 화두를 던져 주었다고 볼 수 있다.
3.
앞에서 김소진의 어휘들은 국어사전을 독파하며 배운 '학습 언어'라는 것을 밝혔다. 그러나 김소진의 그것은 단순한 '학습 언어'가 아니다. 국어사전을 독파하며 나름대로 기록 · 정리한 어휘들이, 체득한 살아 있는 말들과 결합하여 그만의 독특한 순우리말이 탄생한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자라나는 우리 아이들의 학교교육에서 언어 교육의 중요성을 실감할 수 있다. 그들 모두를 작가로 만들자는 것은 아니다. 단순히 국어사전을 외우게 하자는 것도 아니다. 다만, 그만큼 우리 학생들로 하여금 국어사전과 우리말에 보다 친근해지도록 교육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를 일깨워주고 싶어서이다. 작가 김소진의 소설 어휘들은 바로 그 중요성을 가늠케 해주는 좋은 사례이다. 그가 좀더 많은 작품에 이와 같은 우리말 어휘를 지속적으로 사용하였더라면 살아 숨쉬는 어휘들을 더욱 많이 접할 수 있었을 텐데…… 사후에 전집이 출간된 요즘 그의 소설 어휘들이 더욱 아름답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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