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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배소만처상 김정희 에 관련 문학 정보를 알려드릴께요.
배소만처상 김정희
배소만처상 김정희 해설
배소만처상 김정희 해석 해설입니다. 조선 헌종 7년(1840년) ‘윤상도(尹尙度)의 옥(獄)(1830)’에 뒤늦게 연루되어 제주도에 유배된 추사 김정희(1786~1856)는 유배 3년째인 1842년 12월에 부인 예안 이씨의 별세 소식을 한 달여가 지난 뒤에야 듣게 된다. 부인이 운명하던 날과 사후 7일째 되는 날에도 부인에게 편지를 썼다고 전해질만큼 금슬이 각별하였던 추사는 뒤늦게 접한 비보에 처절하고 애끓는 마음을 위의 시로 토로하고 있다.
인간세계에서 부부의 연을 맺어준다는 월하노인(月下老人, 月下氷人)에게 애원하여 다음 세상에서는 서로의 처지를 바꾸어 추사 자신이 아내가 되고 부인은 천리 밖에 유배된 남편의 처지가 된다면 지금 추사의 슬픔과 비통함을 이해할 것이라는 극진한 비애를 담고 있는 도망시(悼亡詩)의 백미(白眉)로 일컬어지는 작품이다.
배소만처상 김정희 주제
배소만처상 김정희 주제 뜻 정리 입니다.
◉ 갈래 : 한시, 만시, 도망시
◉ 주제 : 죽은 아내로 인한 슬픔과 그리움
배소만처상 김정희 줄거리
배소만처상 김정희 줄거리 입니다.
那呼月姥訴冥司(나호월모소명사)
來世夫妻易地爲(내세부처역지위)
我死君生千里外(아사군생천리외)
敎君知我此心悲(교군지아차심비)
어떡하면 월하노인을 데려다가 저승에서 소송하여
내세에는 우리부부의 처지를 바꿔서 태어나서
천리 밖에 나는 죽고 그대는 살아남아
나의 이 슬픈 마음을 그대에게 알게 할까!
배소만처상 김정희 배경 특징
배소만처상 김정희 배경 특징 입니다.
이 시는 추사 김정희가 아내의 죽음 소식을 유배지에서 듣고 지은 시로, 조선시대 도망시의 압권으로 꼽힌다. 추사는 제주 유배지에서 아내에게 자주 편지를 썼다. 아내가 병든 뒤에는 더욱 자주 편지를 보냈다. 약을 제대로 쓰고 있는지, 아예 드러누웠다는데 그렇게 아픈 것인지 등 걱정이 많았다.
1842년 11월 18일, 제주도에 귀양 중이던 추사는 병중의 부인에게 병세를 묻는 편지를 낸다. 그리곤 아내로부터 소식이 오기를 손꼽아 기다린다. 한 달 뒤(1842년 12월 15일) 아내의 죽음을 인편에 듣고 추사는 원통한 마음을 담아 도망시를 썼다고 한다.
만시(挽詩)는 죽은 사람을 애도하기 위해 지은 시다. '만시(輓詩)’로 쓰기도 하는데, 끈다는 뜻으로 상여를 끈다는 데서 나온 말이다.
조선시대 사람들은 많은 한시를 지었다. 당시 사대부가에서 누가 죽으면 만시를 지어 애도하는 것이 당연한 예의에 속했다. 가깝고 사랑했던 사람이 죽었을 때 애절한 마음을 드러냈고, 좀 먼 사람의 죽음 앞에서는 의례적인 시를 짓기도 했다.
조선시대 만시에는 아내를 위한 도망시(悼亡詩),
친구를 위한 도붕시(悼朋詩),
먼저 간 자식을 위한 곡자시(哭子詩)가 있다.
스승과 제자, 선배 혹은 자신이 데리고 있던 종을 위한 만시도 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죽음을 스스로 기린 자만시(自輓詩)를 짓기도 했다.
특히 조선시대 사대부들은 사랑하는 여인을 위한 마음을 마음껏 드러낼 수 없는 처지였는데, 아내가 죽었을 때 짓는 도망시만큼은 체면도 위엄도 모두 내려놓을 수 있었다고 한다.
배소만처상 김정희 분석
배소만처상 김정희 분석 입니다.
◉ 김정희(金正喜, 1786년 ~ 1856년)는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서예가·금석학자·고증학자이다. 본관은 경주, 호는 완당(阮堂)·추사(秋史)·예당(禮堂)·시암(詩庵)·과파(果坡)·노과(老果) 등이다. 한국 금석학의 개조(開祖)로 여겨지며, 한국과 중국의 옛 비문을 보고 만든 추사체가 있다. 그는 또한 난초를 잘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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