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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는 강물이 흐르네 김영랑 해설 주제 뜻 배경 특징 줄거리 정리

by 문학정보 2022. 9.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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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문학정보입니다.

오늘은 끝없는 강물이 흐르네 김영랑 에 관련 문학 정보를 알려드릴께요.

 

 

끝없는 강물이 흐르네 김영랑

끝없는 강물이 흐르네 김영랑

 

 

끝없는 강물이 흐르네 김영랑 해설

끝없는 강물이 흐르네 김영랑 해석 해설입니다. 김영랑의 시는 주로 ‘내 마음’의 세계를 다룬다. 이 시도 외부 현실과 무관한 고요한 내면 세계의 평화와 아름다움을 그려 내고 있다. ‘강물’이 ‘내 마음의 어딘 듯 한편에’ 흐르고 있다는 표현에 주의해야 할 것이다. 자유시이지만 사실은 3음보 가락이 규칙적으로 반복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끝없는 강물이 흐르네 김영랑 주제

끝없는 강물이 흐르네 김영랑 주제 뜻 정리 입니다. 

▶ 제재 : 강물
▶ 주제 : 내 마음 속의 평화로움과 아름다움

 

끝없는 강물이 흐르네 김영랑 줄거리

끝없는 강물이 흐르네 김영랑 줄거리 입니다. 

끝없는 강물이 흐르네
- 김영랑


내 마음
의 어딘 듯 한 편에 끝없는
강물이 흐르네
㉠돋쳐* 오르는 아침 날 빛이 빤질한
은결을 도도네*
가슴엔 듯 눈엔 듯 또 핏줄엔 듯
마음이 도른도른* 숨어 있는 곳
내 마음의 어딘 듯 한 편에 끝없는
강물이 흐르네
(󰡔시문학󰡕 창간호, 1930.3)

* 돋쳐 : ‘돋아’의 힘줌말. 기본형은 ‘돋치다’
* 도도네 : ‘돋우네’의 부드러운 표현
* 도른도른 : 나직하고 정답게 속삭이는 소리. 또는 그 모양.

 

끝없는 강물이 흐르네 김영랑 배경 특징

끝없는 강물이 흐르네 김영랑 배경 특징 입니다. 

▶ 성격 : 서정적, 낭만적, 감각적
▶ 경향 : 유미주의적
▶ 운율 : 3음보 율격
▶ 어조 : 여성적 목소리
▶ 표현 : 의성법, 반복법, 상징법
▶ 특징 : ① 세련된 감각어의 사용
② 음악성의 추구. (유음, 비음의 사용. 각운. 음성 상징)
▶ 구성 : 수미 쌍관의 구성
① 마음 속에 흐르는 강물(1,2행)
② 강물의 아름다운 모습(3,4행)
③ 강물의 위치(5,6행)
④ 마음 속에 흐르는 강물(7,8행)

우리가 영랑의 시를 읽을 때 어떤 감명을 받는다면, 그것은 주로 그의 시가 지닌 음악성에 연유하는 것이기가 쉽다. 이 말은 그가 시에서 구체적인 체험 내용을 진술하기보다는 그것의 단편적이고 순간적인 인상과 감흥을 드러내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그러므로 그의 시선은 외부 세계의 객관적 대상을 향해 열려 있기보다는 그 대상을 ‘내’ 안으로 끌고 들어가는 경향이 있다.
이 시가 겨냥하고 있는 것도 바로 ‘내 마음’이다.
‘끝없는 강물’은 객관적 실체가 아니라, ‘내 마음의 어딘 듯 한편에’ 흐르고 있고 ‘가슴엔 듯 눈엔 듯 핏줄엔 듯’ 숨어 있다고 화자는 말한다. ‘숨어’ 있다는 말은 마음이 세상을 향해 열려 있지 아니하고 내면 세계로 잦아든다는 것을 뜻한다.
그는 외부 세계의 갈등을 벗어나 스스로 마음의 평정을 구하고 그 속에서 느끼는 그윽한 평화와 안정감을 찾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선율과도 같이 마음 속에 흐르는 ‘끝없는 강물’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어떤 이는 이를 ‘근원적인 생명 자체’를 의미한다고 보기도 한다. 이에 대해서는 얼마든지 다른 해석이 가능하다. 그만큼 모호한 것이 이 마음 속의 강물이라고 하겠다. 우리는 그의 시가 지향하는 음악성과 관련하여 그것이 우리의 ‘마음’과 ‘가슴’과 ‘핏즐’에 연면(連綿)히 흐르는 민족적 정서나 가락을 의미한다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끝없는 강물이 흐르네 김영랑 분석

끝없는 강물이 흐르네 김영랑 분석 입니다. 

서정시의 본령을 보여 준 김영랑
김영랑(1903-1950)의 본명은 김윤식으로 1903년 전라남도 강진에서 출생하였다. 강진 보통 학교를 마치고 서울에 올라와 휘문 의숙을 다니다가 3·1운동으로 6개월간의 옥고를 치렀으며, 이 일로 휘문 의숙을 중퇴한 김영랑은 일본으로 건너가 학업을 계속하였다. 그러나 관동 대지진이 일어나 다시 학업을 중단하고 강진의 자택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강진에서 무료한 생활을 하고 있던 영랑에게 송정리의 벗 박용철이 찾아와 시 전문지를 같이 내자고 제안했다. 박용철은 오랜 숙의 끝에 사재를 털어 「시문학」 창간호를 1930년에 발간하게 된다.
1930년은 김영랑의 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그 해 3월에 간행된 「시문학」 창간호에 13편의 시를 한꺼번에 발표하며 시단에 화려하게 등장하였다. 그리고 같은 해 5월에 나온 「시문학」 2호에 9편의 시를 발표하였다. 말하자면 그는 20편이 넘는 작품을 1930년 두 달 동안에 한꺼번에 발표했던 것이다.
김영랑의 시는 당시 문단에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1920년대 중반 이후 카프를 중심으로 쓰여진 경향시는 생경한 사상성과 경직된 목적 의식을 주로 드러냈기 때문에 당시의 시단은 서정시의 본령을 보여 주는 김영랑의 시에 깊은 인상을 받았던 것이다. 이로써 시에 대한 인식이 새롭게 변화하였고 시란 무엇인가에 대한 방법적 자각을 가지고 시를 쓰는 사람들이 늘어나게 되었다.


경향시 위주였던 당시 문단에 신선한 충격을 주고, 
시에 대한 인식 변화시켜
김영랑의 시에는 ‘내 마음’이라는 어휘가 유달리 많이 보이는데 그가 이 말을 많이 사용한 것은 내면의 순결성을 표현하려는 의도 때문이다. 그런데 그는 자신의 마음의 상태를 직접 제시하지 않고 대부분 자연의 이미지를 통하여 표현하였다.
그의 초기 시에 반복되어 나타나는 맑고 깨끗하고 고요한 자연의 정경은 그의 내면 세계를 표현하는 것들이다. 「동백잎에 빛나는 마음」에 제시된 아침 햇살처럼 빛나는 은빛의 강물, 「제야」에 제시된 맑은 샘물과 밤의 심상, 「가늘한 내음」에 제시된 보랏빛 노을의 고요한 아름다움, 「내 마음 아실 이」에 나오는 향맑은 옥돌의 심상 등은 모두 마음의 순결성을 나타내는 예들이다. 이렇게 맑고 깨끗하고 고요한 자연의 정경을 통하여 자신이 추구하는 순결한 마음의 세계를 표현한 것이다.
김영랑 서정시의 출발은 바로 이 순결성에 있었다. 이 순결성이 그의 시를 아름다운 해조와 서정주의의 극치로 몰아간 것이다. 그 순결한 마음은 자연의 미묘한 변화와 대응되므로 분명히 파악되지는 않는다. 순결성은 꽃가지의 은은한 그늘이나 봄날의 미미한 아지랑이처럼 모호한 상태로 존재할 수밖에 없다.
영랑은 자연의 맑고 깨끗한 정경을 통해 마음의 순결성을 보여 주었는데, 자연의 정결한 모습에 집중하게 되면 자연히 자연의 아름다움에 대해 황홀감을 갖는 단계에 이르게 된다. 본래 자연을 통한 순결성의 추구는 현실 세계의 추악함을 인식하는 데서 오는 경우가 많다. 이때에 자연은 현실과 대립적 위상에 놓이게 된다. 현실은 고통과 비애가 교차되는 장소로 인식되는 반면, 자연의 아름다움과 순결함은 이 모든 현실적인 것을 망각할 수 있도록 해준다. 
그의 많은 시들에서 보이는 것처럼 자연의 어느 한 순간이 가져다주는 극치의 아름다움은 그의 정신을 몽롱케 할 정도로 황홀감을 안겨 준다. 저녁놀이 물드는 보랏빛 하늘, 밤 깊이 흐르는 물소리와 찬란한 별떨기, 은색으로 황홀히 빛나는 달빛, 맑은 가을날의 고요한 정경, 이 모든 것이 자연미의 한 정점을 보인 것이어서 시인은 그 황홀감에 가슴 설레며 몸둘 바 몰라 한다.
그런데 이 황홀한 순간은 그리 오래 지속되지 못한다. 모란이 한번 흐드러지게 피어 그 찬란한 빛을 불태웠다가 천지에 자취도 없이 사라지는 것처럼 지상의 모든 아름다움이란 얼마나 쉽게 소멸하는지 모른다. 자연의 순결성도 현실 세계의 혼탁함 때문에 그 모습을 확연히 드러내지 않으며, 자연의 황홀한 아름다움 또한 자취 없이 사라지고 마는 것이라면 영랑의 자연 인식은 비극적인 모습을 띨 수밖에 없다. 그 비극성이 그의 심혼을 긴장시키고 그의 서정시를 가능케 한 요인이었을 것이다.
예컨대 영랑의 시 「모란이 피기까지는」은 모란이 사라져 버리고 자신의 마음에 비탄과 상실의 감정이 남는 과정을 자세히 묘사해 놓았다. ‘뚝뚝’이라는 시어를 통해 모란이 무정히 사라져 버리는 정경을 소리로 나타내는가 하면, ‘떨어져 누운 꽃잎마져 시들어버리고’라는 시행을 통해 처절한 상실의 순간과 상실 뒤에 오는 형언할 수 없는 비탄의 정서를 표현하였다. 그리고 이어서 삼백예순 날을 계속 울고 지낸다는 과정적 표현을 배치하여 그리움의 정도가 대단하다는 사실을 드러내고자 했다.
한편으로 영랑의 자연에 대한 인식이 시인 자신의 내부에서 우러나오는 음악적 장단과 호응을 이루며 하나의 정경으로 표현될 때 그것은 오롯한 미의 원광을 두르게 된다. 가령 영랑의 「오월」 같은 시는 봄 들판의 약동하는 아름다움을 표현한 작품인데 시각적 이미지를 적절히 구사하여 심미감을 높이고 운율의 변화를 통하여 흥겨운 율동감을 불러일으킴으로써 서정적 표현의 한 극치를 보여주고 있다. 이 시는 우리 시의 역사에서 귀중히 간직하고 전수해야 할 표현 상의 백미(白眉)에 해당하는 작품이라고 판단한다.


맑고 깨끗한 자연의 정경 통해 자신이 추구하는 순결한 마음의 세계 표현
김영랑의 시에서 인생과 사회에 대한 발언이 중심을 이룬 작품은 아주 적다. 현실에 대한 반응을 보인 예로는 「거문고」라든가, 「독을 차고」, 「우감(偶感)」, 「춘향」 등의 작품을 들 수 있을 정도이다. 이런 점 때문에 현실주의적 시각을 가진 사람은 김영랑의 시가 우리에게 어떤 효용이 있겠느냐고 반문하는 경우가 있다. 특히 앞에서 말한 「오월」처럼 자연의 정경을 묘사하는 것으로 일관한 작품은 그런 지적을 많이 받고 있다.
그러나 인생과 사회에 대한 직접적인 발언만 우리의 삶에 도움을 주는 것이 아니다. 그것과는 관련이 없는 듯한 자연에 대한 상상도 우리의 감정을 풍요롭게 하며, 새로운 비유와 표현의 구사도 언어사용의 폭을 넓힘으로써 실제의 삶을 윤택하게 가꾸는 방법이 될 수 있다. 자연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고 그것을 아름다운 언어와 절묘한 기법으로 표현하였다는 사실만으로도 김영랑의 시는 그 나름의 충분한 가치를 지니는 것이다.



김영랑의 삶과 문학

◎ 김영랑의 생애 
 · 13세에 첫 결혼, 23세에 두번째 결혼
 · 당대 최고의 발레리아 최승희와 사랑에 빠짐
 · 고향서 친구들과 중등학교(금릉중학교) 설립
 · 1950. 9. 29(47세). 6.25 전쟁 중 포탄 맞아 숨지다. 
   망우리 공동묘지에 묻혔다가 용인공원으로 이장
◎ 성격
 · 엄한 편, 그러나 속은 여림-큰누나의  맏딸이 죽었다는 소식 듣고 몹시 울다. 딱 두 번 우는 모습을 보았는데, 할머니 죽고 관에 못 박으면서 한 번 울고, 큰외손녀 죽고 울고.....
◎ 영랑의 학교 생활
· 휘문의숙 재학 : 홍사용, 박종화, 정지용, 이태준 등과 함께 수학
· 일본 청산 학원(영문과) 유학 : 본격적인 문학세계를 열어줌. 시인 박용아와 교류. 청년 아나키스트(무정부주의자) 박열을 통해 사회주의에 접합. 관동대지인으로 유학을 중단하고 귀국
◎ 생가 
전남 강진군 강진읍 탑골. 돌담집. 생가의 모습 복원(우물, 행랑채 등)
◎ 시어의 특징
 · 향토적 : 고향의 정서를 담아냄. 남녘 사람들의 숨결이 배어 있다. 
 · 친숙한 언어. 생성과 소멸의 언어
◎ 김영랑의 문학세계와 고향의 풍광
 · 남도의 이미지와 언어로 마음의 상태를 낮은 목소리로 노래
 · 감수성 풍부
 · 고향의 이미지과 소재 수용. 고향의 풍광과 언어가 배어 있다 - 이것이 카프와 모더니즘에 휩쓸리지 않고 순수한 문학세계를 구축하게 했다. 
 · ‘가장 향토적인 것이 가장 민족적이다’는 것을 증명함.
 · 영랑 시의 음악성 : 사랑채에서 판소리와 북의 신명에 도취.임방울,이화중선,이중선 등 당대 최고의 소리꾼들을 불러 노래를 듣다. 소리와 장단에 심취
· 당대의 현실보다는 흩어져 가는 것에 대한 슬픔, 시간 속에서 명멸해 가는 인간의 운명에 집착
· 고향 주변의 자연 환경이 김영랑 시의 정조에 영향을 끼침. 아름답고 고요한 고향의 풍광이 일제라는 가혹한 현실을 잊게 했을 것. 영랑은 다산(정약용)초당 주변의 숲과 길을 좋아함
◎ 문학 활동
· 강진파 시인 형성 : 박용아. 이현구, 김영랑. 인간의 마음에 고요히 스미는 시
· 시문학 창간 : 정지용, 김영랑, 박용아. 목적주의 문학(카프)과 거리를 둠. 한국인의 정서에 부합하는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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